공통 생물학 축: “섬유화는 하나의 언어다”
“장기만 다를 뿐, 동일한 오케스트라의 변주곡.” 섬유화를 한 문장으로 설명하라면 이 말이 가장 가깝습니다. 폐가 딱딱해져 숨이 차고, 간이 굳어 피곤이 쌓일 때, 눈에 보이지 않는 무대 뒤에서는 늘 비슷한 음악이 연주됩니다. 지휘자는 TGF-β라는 신호, 연주자의 다수는 섬유를 만드는 세포들, 마지막에 울려 퍼지는 잔향은 콜라겐이라는 단단한 자국이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같은 악보를 들고 있어도, 폐와 간은 서로 다른 음색으로 노래합니다. 왜 그럴까요?
먼저 이 음악의 알파벳부터 알아봅시다. 상처가 나거나 염증이 생기면, TGF-β라는 메시지가 발송됩니다. 이 메시지는 세포 표면의 우체국을 거쳐 세포핵으로 배달되고, “지금부터 공사를 시작하라”는 명령문으로 번역됩니다. 그 순간 평소엔 얌전하던 섬유아세포가 근육질의 ‘미오파이브로블라스트’로 변신해 콜라겐이라는 시멘트를 부지런히 깔기 시작하죠. 처음엔 상처를 메우는 응급 조치라 고맙지만, 공사가 멈추지 않으면 길이 지나치게 넓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마을이 조용해질 틈이 없어요.
여기서 중요한 조연이 하나 더 등장합니다. 우리 몸의 바닥, 즉 세포가 붙어 사는 ‘바탕질’이 딱딱해지면 세포는 그 딱딱함을 감지합니다. “바닥이 단단하네? 그럼 더 단단하게!”라는 되먹임이 켜지는 것이죠. 마치 공사를 하느라 도로가 넓어졌더니 차가 더 빨리 달려서, 다시 도로를 더 넓히는 악순환이 생기는 꼴입니다. 한 번 굳기 시작하면 스스로 굳기를 부르는 셈이라 초기에 브레이크를 밟는 것이 관건입니다.
그럼 같은 메시지를 왜 장기마다 다르게 해석할까요? 폐와 간을 나란히 놓고 보면 비밀이 보입니다. 폐에서는 ‘상피세포’가 쉽게 다칩니다. 먼지, 바이러스, 담배연기 같은 자잘한 공격이 계속 들어오니까요. 다친 상피세포 주변에는 αvβ6라는 복잡한 이름의 단추가 있는데, 이 단추가 눌리면 잠들어 있던 TGF-β가 깨어나 “공사 시작!” 신호를 크게 외칩니다. 그 신호를 듣고 폐의 섬유아세포들이 공사팀으로 변신하죠. 반면 간은 다른 풍경입니다. 간에는 ‘별모양세포’라는 창고지기가 있습니다. 평소에는 비타민 A를 쟁여 두는 착실한 노동자인데, 기름진 음식, 알코올, 담즙의 정체, 바이러스 같은 스트레스가 몰려오면 갑자기 현장소장으로 돌변해 콜라겐 공장을 돌립니다. 같은 TGF-β 신호라도, 폐는 상피세포의 ‘비상벨’을 통해 켜지고, 간은 대사와 담즙 흐름, 간의 면역세포와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켜진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결국 악보는 같아도 공연장이 다르면 울림이 달라지는 셈입니다.
섬유화가 무섭게 느껴지는 이유는 여기서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굳어진 바탕질 자체가 또 다른 감독이 되어 젊은 세포에게도 “너도 굳어라”라고 지시합니다. 그래서 “염증만 가라앉히면 끝나겠지?”라는 순진한 기대가 잘 들어맞지 않죠. 무대세트가 바뀌어버리면, 배우가 바뀌어도 공연 분위기는 쉽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제 무대 뒤의 전력실, 미토콘드리아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요.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의 발전소입니다. 손상과 스트레스가 쌓이면 이 발전소에서 ‘매연’ 같은 활성산소가 많이 나오고, 에너지 생산 방식도 삐걱거리기 시작합니다. 피로가 쌓이면 사람이 예민해지듯, 세포도 예민해집니다. 그러다 아예 ‘노화세포’ 모드로 들어가 “나 일 안 해” 선언을 하죠. 문제는 일을 안 하는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 노화된 세포는 이웃에게 불평 방송(SASP라 부르는 염증성 신호)을 내보내 주변까지 헉헉거리게 만듭니다. 동네 한복판에서 확성기를 켜고 계속 짜증을 부리는 주민을 떠올려 보세요. 금세 분위기가 나빠지겠죠. 이 신호는 TGF-β의 음량을 더 키우고, 공사팀을 퇴근 못 하게 붙잡습니다.
그렇다면 이 ‘불평 방송’을 멈추고 노화세포를 정리하면 섬유화를 되돌릴 수 있을까요? 동물 연구에서는 꽤 고무적인 장면이 나옵니다. 노화세포만 골라 없애는 약(세놀리틱)이나 면역의 경찰관을 다시 부르는 전략을 쓰면, 굳은 조직이 조금씩 말랑해지고 기능이 나아지는 신호가 포착됩니다. 여기서 경찰관 역할을 맡은 것이 자연살해세포, 영어로 NK 세포입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세포, 비정상적으로 변한 세포를 찾아내 정리하는 순찰대라고 보면 됩니다. 다만 길이 이미 너무 딱딱해지고, 억제 물질이 가득하면 경찰관도 지칩니다. 순찰차가 진입하기 어려울 정도로 골목이 막혀 있다면, 사이렌만 울린다고 해결되지는 않겠지요. 그래서 노화세포 정리는 유력한 해법이지만, 동시에 길을 다시 트고(기질을 부드럽게 만들고), 발전소의 매연을 줄이며(미토콘드리아 기능 회복), 마을 규칙을 정비하는 일(대사와 면역의 균형)을 함께 해야 빛을 발합니다.
이쯤에서 거의 모든 과학 이야기의 단골 질문이 등장합니다. “쥐에서 된다는 게 사람에서도 되나요?” 동물 실험은 빠르고 명확합니다. 예를 들어 폐에 특정 약제를 뿌려 며칠, 몇 주 사이에 섬유화를 만들고, 약을 써서 좋아지는지 바로 확인합니다. 간도 비슷하죠. 연구실의 시간은 압축파일처럼 빽빽합니다. 하지만 사람의 질병 시간은 느리고 복잡합니다. 폐는 미세먼지, 감염, 흡연 같은 요인이 오랜 세월 겹치고, 간은 술, 기름진 식사, 대사질환, 바이러스가 교집합을 만들어요. 쥐에게서 보인 ‘금방 굳고 금방 풀리는’ 일들이 사람에게서는 ‘서서히 굳고 잘 안 풀리는’ 패턴으로 변하곤 합니다. 집 구조가 한 번 바뀌면 인테리어를 원상복구하기 어렵듯, 바탕질이라는 집의 뼈대가 바뀌면 단순한 약으로는 되돌리기 벅찹니다.
게다가 사람의 장기는 셀 수 없이 다양한 세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섬유아세포”라고 통칭해도, 태생과 성격이 다른 하위 집단이 여럿이라 같은 약에 반응이 제각각입니다. 면역세포도 취향이 뚜렷하고, 지치기도 쉽습니다. 약이 몸속에서 어떻게 퍼지는지도 차이가 큽니다. 작은 동네에서 확성기를 꺼뜨리는 것과, 대도시 한복판에서 소음을 줄이는 건 완전히 다른 작업이니까요.
그렇다고 비관할 필요는 없습니다. 번역이 어렵다고 책을 덮을 이유는 없죠.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사람의 실제 조직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정밀 지도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어느 동네에 어떤 세포가 몰려 사는지, 누가 누구에게 말을 거는지까지 확인해 표적을 좁힐 수 있게 되었죠. 둘째, 치료의 목표를 “덜 굳어 보인다”에서 “숨이 덜 차고, 간이 다시 일을 한다” 같은 기능 회복으로 잡으면 길이 보입니다. 셋째, 순서가 중요합니다. 불이 번지는 한가운데서 페인트칠을 해봐야 소용없듯, 염증의 열기를 낮추고, 바닥을 조금 부드럽게 만들고, 그다음 노화세포와 과로하는 공사팀을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재생을 도와야 효과가 겹칩니다. 넷째, 작은 임상에서 신속히 배우고 수정하는 방식이 힘을 발휘합니다. 환자에게서 나온 세포와 미니 장기(오가노이드)로 먼저 가설을 시험하고, 가능성이 보이면 사람에게서 안전하게 확인하는 식이죠.
결국 메시지는 간단합니다. 섬유화는 하나의 언어입니다. 그 언어의 기본 문법은 TGF-β에서 콜라겐으로 가는 명령문이고, 억양과 발성은 장기의 환경이 정합니다. 미토콘드리아가 흐트러지면 문장에 쉼 없이 쉰 목소리가 붙고, 노화세포는 마이크 볼륨을 올립니다. NK 같은 면역 순찰대는 길이 막히면 제 실력을 못 냅니다. 그래서 치료는 공통 언어를 낮추는 동시에, 공연장의 음향과 좌석 배치까지 손봐야 합니다. 언어와 무대를 함께 고치면, 굳어버린 문장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합니다. 숨이 다시 길어지고, 간이 다시 말랑말랑해지는 길이 열리겠죠.
장–간–폐 축: “장 속 신호가 폐의 강직을 부른다?”
“장 속 신호가 폐의 강직을 부른다?” 처음 들으면 연결이 어색합니다. 장은 밥길이고, 폐는 숨길인데,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까요? 지도만 펴보면 길이 보입니다. 장에서 흡수된 영양소와 미생물 산물이 문맥 혈관을 타고 먼저 간에 들어갑니다. 간은 이 피를 검사하는 세관처럼 작동하죠. 그리고 간이 만들어 담즙으로 돌려보내는 신호들이 다시 장내 미생물의 구성을 바꾸고, 그 바뀐 미생물과 대사물이 전신을 타고 폐까지 도달합니다. 왕복 노선이 끊임없이 돈다는 뜻입니다. 이 노선에서 신호가 한 번 일그러지면, 간은 뻣뻣해지고 폐는 경직을 배웁니다.
장내미생물부터 살펴보죠. 장 속 세균은 단순한 ‘동거자’가 아니라, 매일 수천 가지 화학문을 써내는 작가입니다. 그중에는 짧은사슬지방산처럼 염증을 낮추고 장벽을 단단하게 만드는 편지들도 있고, 리포폴리사카라이드처럼 면역을 흥분시키는 경고문도 있습니다. 장벽이 헐거워지면 이 경고문이 문맥 혈관으로 새어 들어가 간을 자극합니다. 간의 쿠퍼세포와 별모양세포는 불청객의 문장을 민감하게 읽고, “현장 강화” 모드로 돌입하죠. 그 결과 콜라겐 공장은 가속되고 담즙의 조성도 바뀝니다. 담즙산은 단지 지방을 녹이는 세제에 그치지 않습니다. FXR, TGR5 같은 수용체를 자극해 대사와 염증의 톤을 조절하는 신호 분자이기 때문입니다. 담즙산의 악센트가 변하면 장내미생물의 명단까지 바뀌고, 이 변화가 다시 간으로, 더 멀리 폐로 번져 갑니다.
폐는 왜 이 왕복선의 영향을 받을까요? 혈류는 온몸을 하나의 강으로 묶습니다. 간에서 조절 실패로 염증성 매개체, 비정상 담즙산 패턴, 미세독성 대사물이 혈중에 쌓이면, 폐의 미세혈관과 상피가 그 파장을 받아 압력을 받습니다. 폐포 표면은 얇고 섬세합니다. 작은 파장에도 쉽게 거칠어지죠. 이때 TGF-β 같은 섬유화 신호가 높아지면 폐의 섬유아세포가 긴장하고, 이미 단단해진 기질은 더 많은 단단함을 부릅니다. 결과적으로 “밥길의 소음”이 “숨길의 경직”으로 번역되는 셈입니다.
흥미로운 건 반대 방향의 화답입니다. 폐에서 만성 염증이 지속되면 전신 염증 점수가 올라가고, 간의 인슐린 감수성과 지질 대사가 흐트러집니다. 그 여파로 담즙산 풀의 비율이 더 틀어지고, 장내미생물 생태계가 기울죠. 결국 장–간–폐는 삼현일체로 묶여 있습니다. 어느 한 현이 심하게 삐끗하면, 다른 현 두 줄도 음이탈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그럼 실제로 무엇이 ‘스위치’가 될까요? 장벽의 상태가 핵심입니다. 장벽이 탄탄하면 미생물의 신호가 적절히 필터링되어 간과 폐에 과민반응이 덜 생깁니다. 장벽이 헐거워지면, 평소라면 장 속에서 무사히 소화되거나 배출될 분자들이 문맥을 타고 올라오죠. 여기에 담즙산의 문체가 얹힙니다. 1차, 2차 담즙산의 비율과 황산화·글루쿠론산화 같은 변형 패턴이 바뀌면, FXR/TGR5 수용체를 통해 면역과 대사 스위치가 다르게 눌립니다. 간에서는 별모양세포가 더 민감해지고, 폐에서는 대식세포와 상피가 섬유화 쪽으로 기울기 쉽습니다. 미생물–담즙–수용체라는 삼각 대화가 장–간–폐 축의 문장부호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미토콘드리아와 노화세포의 이야기를 이 축 위에 다시 얹어보면 구도가 또렷해집니다. 장내 염증이 길어지면 장세포의 미토콘드리아가 먼저 지칩니다. 에너지 생산이 삐걱대면 장벽 단백질의 유지·보수가 느려지고, 작은 틈이 넓어집니다. 이 틈으로 유입된 자극은 간의 미토콘드리아에도 부담을 주어 ROS를 늘리고, 별모양세포의 노화 전환을 부추깁니다. 노화세포가 늘어나면 SASP가 커져 전신 염증이 높아지고, 폐에서는 NK 같은 순찰대가 쉽게 탈진합니다. 길이 딱딱해진 폐에서는 애초에 순찰차가 돌아다니기 어렵고, 장–간에서 날아오는 사이토카인의 파동은 더 자주, 더 크게 폐의 섬유화 스위치를 건드립니다. 결국 대사는 바닥, 면역은 신호등, 기질의 경직은 교통 흐름이라고 보면 직관적입니다. 바닥이 울퉁불퉁하면 신호등을 잘 맞춰도 정체가 해소되기 어렵고, 반대로 매끈한 바닥 위에서는 신호 조절의 효과가 커집니다.
여기서 인포그래픽을 상상해 봅시다. 화면 왼쪽 아래에는 장이 있고, 그 위에 미생물 군집을 은하처럼 찍습니다. 은하에서 나오는 점선 화살표는 짧은사슬지방산, 트립토판 대사물, LPS 같은 이름표를 달고 문맥을 타고 간으로 들어갑니다. 가운데 간은 세관처럼 그 화살표를 받습니다. 간에서 오른쪽으로는 초록색 담즙 방울이 다시 장으로 돌아가는 루프를 이루고, 초록색 방울에는 FXR/TGR5라는 작고 또렷한 표지가 붙어 있죠. 간 위쪽에는 붉은 점선이 폐로 향합니다. 그 선을 따라 염증성 사이토카인, 비정상 담즙산 패턴, 대사독성의 아이콘이 이동하고, 폐에서는 얇은 막 위에 굵은 콜라겐 실이 얽히는 장면이 작은 패널로 확대한 채 들어갑니다. 구석에는 미토콘드리아와 번개표시(ROS), 그리고 수면 눈가리개를 한 NK 아이콘이 그려져 “탈진”을 상징합니다. 마지막 캡션은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장–간–폐, 왕복선의 신호가 음을 바꾼다. 장벽을 지키고, 담즙의 문체를 고치고, 기질의 바닥을 편다.”
이쯤에서 “그래서 현실에서 뭘 바꾸면 좋을까?”라는 생활 질문이 떠오릅니다. 정답은 단일 묘수가 아니라, 신호의 순서를 바로잡는 것에 가깝습니다. 장벽부터 다집니다. 섬유질과 발효 식품처럼 장내미생물에게 ‘좋은 먹이’를 주고, 과한 알코올과 초가공 식품, 야간 폭식을 줄이면 장벽의 틈이 좁아집니다. 담즙의 문체를 고치는 데는 규칙적인 식사와 체중 관리, 간을 혹사시키는 습관 최소화가 기본이죠. 의료 영역에서는 FXR/TGR5를 겨냥하는 약, 담즙산 조성에 개입하는 전략, 장내미생물 균형을 조절하는 치료가 시험대에 오르고 있습니다. 동시에 폐에서는 기계적 경직을 낮추는 접근, 노화세포를 정리하고 NK의 길을 터주는 시도가 더해져야 그림이 완성됩니다. 한 축만 세게 밀면 다른 축에서 반동이 오기 쉽습니다. 삼현을 함께 조율할 때 음악이 안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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