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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개그 대부' 전유성이 남긴 마지막 웃음

by 95Lab 2025. 9. 26.

 

“웃지 마, 너도 곧 와.”
짧지만 강렬한 이 한 문장은 전유성이라는 인물을 가장 잘 설명한다. 흔히 죽음을 두려움이나 비극으로만 받아들이는 우리가, 마지막 순간에조차 이렇게 농담을 던질 수 있을까. 이 문장은 단순한 농담 이상의 힘을 지녔다. 인간이 피할 수 없는 끝을 맞이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태도, 그 웃음을 통해 삶을 다르게 바라보게 만드는 시선. 바로 그것이 전유성이 평생 보여준 코미디의 본질이었다.

그의 죽음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이들이 눈시울을 붉혔지만, 곧이어 들려온 일화들은 슬픔을 넘어 묘한 미소를 불러일으켰다. 산소호흡기에 의지하면서도 친구와 후배에게 농담을 건네던 장면, 자신의 묘비명을 미리 준비해두며 “죽음조차 웃음거리로 만들겠다”던 태도. 전유성의 마지막은 마치 오랜 무대 위에서 퇴장하는 희극인이 마지막으로 던진 애드리브 같았다.

그가 세상을 떠난 순간에도 남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남겼다는 사실은, 단순한 개그를 넘어선 그의 철학을 보여준다. 전유성은 평생을 통해 코미디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창이라는 것을 증명해왔다. 누군가는 유머를 가볍게 여기지만, 그는 그 안에서 사회의 관습을 비틀고,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며, 후배들에게 창조적 용기를 심어주었다.

 

마지막까지 ‘개그맨’다운 태도

김학래의 증언처럼, 전유성은 숨쉬기조차 힘든 상황에서도 농담을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억지스러운 유머가 아니었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웃음을 통해 사람을 위로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순간마저도 유연하게 풀어내는 방식을 몸으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농담은 애써 꾸며낸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삶의 습관 같았다.

“형이 조금 먼저 가는 거야.”
“그래, 내가 먼저 가 있을 테니 거기서 보자.”

마치 오래된 동네 친구들이 약속하듯 나눈 이 대화는, 죽음조차 일상의 연장처럼 다루는 그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우리는 흔히 마지막 순간을 ‘엄숙하게’ 맞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유성은 웃음을 통해 오히려 인간다운 모습을 지켜냈다. 어쩌면 그는 마지막 순간에도 코미디언으로서의 정체성을 놓지 않았던 것이다.

죽음을 무대로 만든 묘비명

“웃지 마, 너도 곧 와.”
그의 묘비명은 죽음을 바라보는 전유성의 독특한 시선을 가장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이 문장을 떠올리면 절로 웃음이 나면서도, 동시에 인간 존재의 유한함을 깊이 성찰하게 된다. 코미디가 단순한 농담을 넘어 철학적 사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문장이다.

많은 예술가들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하며 무겁고 장엄한 언어를 남기곤 한다. 그러나 전유성은 정반대로 접근했다. 삶과 죽음을 경계 짓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의 거대한 무대처럼 바라보았다. 그의 묘비명은 남겨진 이들에게 “죽음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 모두 결국 같은 길을 가는 동행자일 뿐”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이 역시 코미디의 힘이었다.

‘개그맨’이라는 언어를 만든 사람

전유성의 혁신은 단지 무대 위에서의 유머에 그치지 않았다.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쓰는 단어, ‘개그맨’조차도 그의 발명품이었다는 사실은 놀랍다. 당시만 해도 희극인을 ‘코미디언’ 혹은 ‘희극인’이라 불렀는데, 전유성은 그것이 시대와 맞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는 ‘개그맨’이라는 신조어를 통해 새로운 코미디의 지향점을 제시했다.

이 단어는 단순히 호칭을 바꾼 것이 아니라, 전유성이 추구한 새로운 웃음의 철학을 담고 있었다. ‘희극’이라는 단어가 과거의 무대 중심적, 고전적 개념에 가까웠다면, ‘개그’는 보다 자유롭고 실험적인 무대를 떠올리게 한다. 젊은 감각과 새로운 형식을 수용하겠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개그맨’이라는 말은 한국 코미디의 한 시대를 열었고, 후배들에게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자부심 있게 말할 수 있는 이름표가 되었다.

이처럼 전유성은 단순히 무대에서 사람들을 웃기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웃음을 ‘새로운 언어’로 만들었고, 한국 대중문화의 뼈대를 바꿔놓았다.

 

‘아이디어 뱅크’라는 별명

전유성을 두고 많은 동료들이 ‘아이디어 뱅크’라고 불렀다. 이 별명은 단순한 칭찬이 아니었다. 그는 일상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발상을 떠올리고, 그것을 구체적인 무대로 옮겨내는 사람이었다. 남들이 미처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그 순간 방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후배들은 그가 한마디 툭 던진 제안이 며칠 뒤 프로그램의 코너로, 혹은 공연의 아이템으로 살아나는 것을 보며 감탄했다.

방송인 이상벽은 “그의 재주가 고인과 함께 묻히는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말 속에는 동시에 또 다른 의미가 담겨 있다. 전유성의 아이디어는 무덤 속에 묻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가 남긴 제자와 후배들의 웃음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디어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나눌 때 더 큰 힘을 갖는다는 사실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후배 최양락은 “형님은 천국에 가서도 아마 ‘여기도 허술한 게 많네, 공연을 열어야겠어’라고 말하며 새로운 무대를 꾸미고 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이 말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전유성을 가까이서 본 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그림일 것이다. 그에게는 세상이 어디든 무대였고, 웃음을 불러올 수 있는 곳이라면 장소와 형식에 구애받지 않았다.

명예보다 도전을 선택한 사람

많은 예술가들이 그렇듯, 전유성 역시 선택의 순간마다 갈림길에 섰다. 하지만 그의 길은 언제나 예상 밖이었다. 그는 안정된 자리와 개인의 영광보다, 새로운 실험을 더 매력적으로 여겼다. 이상벽이 회고했듯, 그는 돈과 명예에는 큰 흥미가 없었다. 대신 발길 닿는 대로 자유롭게 살며 새로운 도전을 향해 나아갔다.

이러한 태도는 그가 남긴 발자취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KBS <개그콘서트>의 개국 공신으로서, 그는 단순히 한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 아니라 한국 방송사에 새로운 웃음의 장을 열었다. ‘개그콘서트’는 이후 수많은 개그맨들을 배출하고, 한국 코미디의 한 시대를 상징하는 공간이 되었다. 그 시작에 전유성이 있었다는 사실은, 그가 얼마나 멀리 내다보는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그는 아시아 최초의 코미디 페스티벌인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의 주춧돌을 놓았다. 이 역시 코미디를 단순한 방송 프로그램의 일부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 장르로 끌어올리려는 시도였다. 국제적인 무대 위에서 한국 개그가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확신, 그리고 그 무대를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열망이 그를 움직였다.

후배들을 향한 진심

전유성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후배들에 대한 애정이다. 그는 기성세대의 권위를 내세우기보다는, 오히려 후배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어주었다. 무명 후배들을 위해 사비를 아끼지 않고 지원했으며, 그들이 설 무대를 마련하기 위해 늘 발로 뛰었다.

이수만 프로듀서가 “후배 양성에 진심이었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단순히 가르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가능성을 믿어주고 지켜봐 주는 선배. 바로 그런 모습 때문에 후배들은 그를 존경하고 따랐다. 그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결국 후배들을 향한 이 따뜻한 마음일지도 모른다.

전유성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그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그의 삶을 돌아보면, 그는 단순히 ‘웃긴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웃음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 했고, 코미디를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사회와 문화의 중요한 언어로 끌어올린 인물이었다.

그가 떠난 후에도 남은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귀한 통찰을 준다. 죽음을 두려움으로만 보지 말고, 오히려 웃음으로 받아들이는 태도. 새로운 언어와 형식을 통해 낡은 관습을 깨뜨리는 용기. 돈과 명예보다 도전을 우선시하는 자유로움. 그리고 무엇보다, 후배와 동료를 먼저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

이 네 가지는 그의 삶을 상징하는 키워드이자, 앞으로 우리가 그의 이름을 떠올릴 때 함께 떠올려야 할 가치들이다. 전유성은 떠났지만, 그의 유머와 철학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다.

결론 – 웃음을 남기고 간 거장

결국 전유성의 삶은 하나의 거대한 무대와도 같았다. 그는 첫 등장부터 마지막 퇴장까지 자신만의 방식으로 관객을 웃겼고, 그 웃음 속에 철학과 혁신을 심어두었다. ‘개그맨’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순간부터, 산소호흡기 속에서도 농담을 멈추지 않았던 마지막까지. 그는 일관되게 웃음을 삶의 중심에 두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죽음은 슬픔보다는 이상하게도 미소를 불러온다. 우리는 눈물 속에서 웃음을 기억하고, 웃음 속에서 그의 철학을 다시 곱씹는다. 그리고 문득, 그의 묘비명처럼 속삭이게 된다.

“웃지 마, 너도 곧 와.”

이 말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남긴 초대장이다. 언젠가 모두 같은 길을 갈 것이니, 그때까지 마음껏 웃으며 살자는. 바로 그것이 전유성이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이자 가장 값진 유산일 것이다.